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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의 재검토[말콤 글래드웰]

by 부산청년1 2022. 4. 27.

어떤 선택의 재검토 책 표지/ 썸네일용

'어떤 선택의 재검토'는 '아웃라이어', '티핑포인트' 등으로 유명한 작가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논픽션 소설이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수행한 일본 공토 공습 작전을 무대로 삼는다. 목차는 크게 1부 꿈과 2부 유혹으로 나눠져 있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헤이우드 핸셀과 커디스 르메이가 나온다. 때는 바야흐로 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이 제국주의 야심을 한창 드러낼 때이다. 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마리아나 제도에 일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특수부대를 구성하게 된다. 핸셀은 미공군 제21기 폭격기 사령부를 지휘하는 준장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는 곧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 소장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부의 무대는 미국이다. 당시 미국은 여전히 육군과 해군의 영향력이 막강했고 전쟁의 핵심이 이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캐나다 출신의 천재 발명가 노든이 폭격조준기를 발명하면서 이런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폭격 조준기로 상공에서 정확한 위치에 폭탄을 떨어뜨리기만 하면 적국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많은 병력이 필요하지 않다. 도시 전체를 파괴할 필요도 없다. 불필요하게 총, 칼을 무기로 싸울 일도 없다. 노든의 폭격 조준기는 미국 공군 양성의 필요성에 힘을 더해주었다. 앨리 배 마주 몽고베리에는 멕스웰 필드 항공기지가 있다. 이곳의 항공 단전 술 학교의 학생들은 토론과 논쟁의 집단 지성을 통해 그들의 전술을 진화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고도 주간 정밀 폭격이었다. 포탄을 무차별적으로 내던질 이유가 없이 적의 보급망이 될 수 있는 '초크 포인트'를 공략하는 것이 승리의 핵심으로 보았다. 요충지 몇 군데를 공습하는 것만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을 말콤은 '폭격기 마피아'라고 불렀다. 핸셀은 폭격기 마피아의 멤버였다. 르메이는 맥스웰 필드 항공전술단에서 훈련을 받기는 했으나 폭격기 마피아의 멤버는 아니었다. 

 

2부의 무대는 괌과 일본으로 바뀐다. 194411월에서 1945년 늦가을 사이에 일어나 도쿄공습사건이 배경으로 나온다. 사실 미국과 일본은 전쟁 구도는 상당히 특이한 것이다. 가장 접점이 없고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나라가 앙숙이 되었다. 결국 이들은 마리아나 제도를 중심으로 한 공중전을 펼쳐야 했다. 미국은 마리아나 제도에 B-29 부대를 둔다면 일본을 폭격할 수 있었다. 헤이우드 핸셀이 B-29 슈퍼 포트리스로만 이루어진 엘리트 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핸셀은 여전히 고고도 정밀 폭격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나 그 믿음은 마리아나 제도에도 시험받게 되었다. 핸셀은 마리아나 제도에 처음 도착해서 일본의 전시 경제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항공기 제조 공장이었고, 도쿄와 그 주변부에 있는 '일본 나카지마 비행기 주식회사'가 일본의 항공 산업 및 전투기 제조 등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핸셀은 그곳을 공격하여 일본의 전시 상황을 악영향을 주고자 했다. 다섯 차례에 걸쳐 그곳을 포격했는데 놀랍게도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포격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후지산 주변부로 불고 있는 정체불명의 강한 바람들이었다. 그 바람들이 포격 조준기의 계산을 엇갈리게 만든 것이다. 이후 그것은 제트 기류임이 알려졌다. 제트 기류를 가로지르면 비행기는 옆으로 밀려나며 제트 기류 안으로 들어가면 높은 고도를 유지하기 힘들어 일본군의 표적이 된다. 기류를 따라가면 비행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정조준을 할 수 없다, 일본의 상공에 의해 고고도 정밀 폭격의 한계를 직면한 상황에서 핸셀은 큰 유혹을 받는다. 그것은 네이팜 폭탄이었다. 네이팜은 휘발유를 섞어 만든 가연성 형태의 젤 폭탄이다. 끈덕한 젤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 폭탄이 터지면 몸에 불타는 젤이 붙고 심각한 화상을 입게 된다. 

 

이는 전지역을 공격 범위로 하는 무차별 무기이다.  핸셀은 차마 그것을 쓸 수 없었다. 반면 르메이 또한 네이팜 사용에 강한 유혹을 느꼈다. 르메이는 기꺼이 그것을 수용했다. 핸셀이나 다른 폭격기 마피아의 구성원들의 도덕적 비전은 필요한 장소만 공격하여 민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전시 상황에서 도덕적 비전을 붙이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기는 하다. 어쨌든 그들을 그러한 신념 하에 자신들의 양심이 수긍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진행하길 원했다. 그러나 르메이의 생각은 달랐다. 르메이에게 있어서 전쟁의 고통을 야기하는 것은 기법이 아니라 '지속 시간'이었다. 모두를 위해 이 지옥 같은 시간을 빨리 종결시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차 없고 단호하게 파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선을 이루기 위해 악을 행했다.

 

"전쟁은 비열하고 끔찍한 일이다. 많은 사람을 죽여야한다. 피할 방법이 없다. 나는 도덕적인 지휘관이라면 이를 가능한 한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 그것을 최소화할 최선의 방법은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는 것이다                                                                                      -커디스 르메이

 

1945년 스미다강이 가로지르는 도쿄 중심 지구에 네이팜 폭탄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그곳은 노동자 계급이 밀집한 상업지구었다. 민간인 밀집 지역을 노린 이유는 그들의 가난한 판자 집에 불이 잘 붙었기 때문이었다. 폭탄이 떨어지자 그야말로 불타는 도시가 되었다. 엄마들은 불붙은 아이들을 들고 뛰어다녔고, 스미다강 운하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뛰어들어 익사하고 말았다.  그날 밤 10만 명이 죽었다. 이후 주요 도시 곳곳에 네이팜 폭격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해 8월에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다. 어떤 지상 침공도 없이 오롯이 공습으로만 진행된 결과였다. 

도쿄 대공습 당시의 위성 사진, 네이팜 폭탄으로 불바다가 된 도쿄의 모습(컬러)
도쿄대공습/ 네이팜 폭탄 투하로 불바다가 된 도쿄의 모습

 
"저는 일본에서 일본인 청중을 상대로 도쿄 소이탄 폭탄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발표 말미에 나이 든 일본 역사가가 일어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소이탄과 원자폭탄을 떨어뜨려준 당신들 미국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큰 충격을 받았죠. 그런 다음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쨋든 우리는 항복했겠죠. 하지만 8월에 우리를 항복하게 만든 것은 엄청난 소이탄 폭격과 원자폭탄의 충격이었습니다.'"     -역사가 톤 래드 크레인
 

르메이가 믿었던 가능한 빨리 전쟁을 끝내는 것에 동의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1964년 일본 정부는 일본 공군의 재건을 도운 공로로 르메이에게 외국인에게 출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1등 아사히 대훈장'을 수여했다. 일본 총리는 그가 했던 일을 알고 있으나 지나간 일이라며 넘어갔다. 르메이는 일본 본토를 불바다로 만든 장본인이고 일본으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은 장군이다. 너무나 모순적이다. 민간인 피해자를 최소화하고자 했던 핸셀은 어떤 공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세상은 르메이 같은 장군을 기억한다. 그러나 말콤은 오히려 핸셀 같은 장군이 마음에 남는다고 한다. 그는 돈키호테같이 이상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겠다. 그는 어떤 유혹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 집요함이 우리에게 또 다른 생각할 여지를 준다. 정밀 폭격을 시도했던 것이 전쟁을 완벽하게 만들었다거나 전쟁의 문제점을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정밀 폭격이 가능해지면 그것을 더 가볍게 보고 쉽게 사용하려는 문제점이 생길 수도 있다. 다만 폭격기 마피아는 전쟁과 휴머니즘이라는 정반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군사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태워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보다 나은 일을 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비정한 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양심과 휴머니즘적 가치를 실현코자 했다. 그들의 이상은 결국 좌절되었지만 그들의 시도했던 의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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